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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하루

결혼에 대한 고찰

나이가 점점 들어갈수록 질문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질문 빈도도 잦아지는 그 질문,

처음엔 분명 그냥 의문문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왜"라는 의문사가 추가되는 질문,

바로 " (왜) 결혼 안 해요?" 혹은 "혼 (왜) 안 해요?".


하도 이 질문을 많이 받다보니 이제 무덤덤해질 때도 된 것도 같은데,

마치 전방을 주시 하지 않고 무방비 상태로 골목길을 걷는데 내 눈앞에 전봇대가 똭 나타나는 것과 같이

그들의 질문은 너무나 예고없이 훅 치고 들어오기 때문에 도대체가 무덤덤해지가 어렵다.



공격을 받기 전 공격태세에 대비를 미리 해둔다면 나도 쨉이 들어왔을 때 재치있게 한방 날려줄 수 있겠지만

문맥의 흐름과 전반적 상황을 철저히 무시한 그들의 갑작스런 질문은 나를 얼어버리게 만든다.


보통 그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은 좋은 의도로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라고 하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같은 질문을 계속 받는 입장에선 아무리 순수한 의도라 할지라도 상처가 되는 것이 사실이다.


"나이가 찼으니 그런 질문 듣는 것은 당연하고 너도 웃으면서 받아쳐라."라고 말하는 분들도 계신데 

막상 내가 생각도 못한 시점에 그런 질문을 받게되면 웃으면서 받아치기 쉽지않다.

대부분의 경우는 웃으면서 넘어가려고 노력하지만, 가끔은 영혼깊은 빡침이 올라오면서

조곤조곤 질문자에게 역으로 따져묻고 싶은게 한 두번이 아니다.


블로그를 통해 그땐 미처 반문하지 못한 반론을 제기하고 싶다.


1. (본인의 기준에 따라 다른 그) 결혼 적령기가 지난 사람들은 그런 질문을 받아 마땅한 것인가?


2. 과연 당신은 이 질문을 남녀 모두에게 공평하게 하였는가? 

   아니면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들에게만 이러한 질문을 했는가?

   (나는 여성으로, 대략 27살이 됐을 때부터 이 질문을 들어왔다.)


3. 결혼이라는 제도에 왜 모두가 찬성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왜 모든 미혼자들이 결혼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가?


4. 나이가 됐다고 무턱대고 결혼했다가 후회하거나 이혼할 바에는 신중하게 결혼에 대해 고민한 뒤 

  결정해도 되지 않는가?


5. 결혼식 그 이후의 출산/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등과 같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불합리한 현상황이 

   개선되지 않았는데 결혼을 강요하는게 옳다고 생각하는가?



+ 나에게 이러한 무례한 질문을 한 너는 나에게 결혼상대를 소개시켜 주기나 할꺼냐?

   소개시켜 주지도 않을꺼면 해라마라 간섭하지 마라!!


실제로 이렇게 반문할 일은 없겠지만, 이런 무례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없어졌음 좋겠다.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 맞아 죽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불편하고 무례한 질문을 수시로 받는 우리 미혼자들(특히 여성미혼자들)이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기죽지 말고 힘냈으면 좋겠다. 아자아자!



추가로,

기혼남성에게 이런 질문하는 사람이 있다.


"와이프 요리 잘해요?"


이 말인 즌슥, "와이프"라는 사람은 요리를 잘해야하는 존재인가보다.



요리잘하는 사람이 집에 필요하면 요리사를 고용하던가 왜 와이프에게 요리를 시키려고 하는가?

왜 대한민국 여성들은 "와이프"가 되기 위해서 요리실력까지 겸비해야하는가?

부부란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 미래를 함께 하기로 약속한 동등한 위치의 협력자, 동반자 아닌가? 


물론 부부 중 음식 솜씨가 좋은 사람이 요리를 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고

같이 돈벌고 바쁘게 사는데 굳이 집에서 요리를 할 필요가 있냐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와이프란 사람은 요리를 잘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반대로 기혼여성에게 "남편 요리 잘해요?"라는 질문을 한 경우는 들은 적도 없다.

보통 기혼여성에겐 "남편이 집안일 많이 도와주나요?"라고 물어본다.

이것 역시 따져묻고 싶은 질문이다.

왜 남편은 집안일을 돕는 입장이고 와이프는 집안일을 주로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건가?

그리고 여기서 '돕는다'는 동사는 남편이 내키면 하는 거고 시간이 없거나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의미로 들린다.

또한 와이프들은 일을 하든 하지 않든 집안일을 메인으로 해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 또한 내포하고 있다.


와이프가 아무리 가정주부라고 할 지라도 집안일을 메인으로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집안일을 그녀에게 모두 맡아라고 하는 것은 가혹한 행위다.

그 집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업무를 분담하여 행해야 하는 일이다.


외벌이 가정이든 맞벌이 가정이든 여성이 집안일을 감당하는 비율이 남성에 비해 높다.

이 또한 나는 인정할 수 없다.


남자들의 변명은 "안 해봐서 못한다. 결혼하기 전에 우리 엄마가 다 해줬다(너희 엄마는 무슨 죄니?) ." 등이다.

그럼 부인들은 결혼하기 전에 집에서 집안일을 전담하는 집안일 척척박사라는 말인가?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써 해내야할 일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그녀들을 볼 때마다 나는 정말 두 손에 불이 나도록 박수를 쳐주고 싶다.


결혼이란 제도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극 찬성하는 것도 아니다.


결혼이란 제도가 필요하고 그 제도 아래 있고 싶으면 결혼을 선택하는 것이고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은 하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결혼으로 인해 대한민국에선 여자가 포기해야할 것들이 너무나 많고 며느리로써 아내로써 요구하는 것들이 나는 숨이 막힌다.


어릴 땐 사랑하면 결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사랑해도 결혼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나의 가치관을 이해해주고 내가 여자로써 겪게될 불합리한 일들에 대해 인지하고 이해하며

같이 평등하게 가사분담과 육아를 맡을 남자가 아니라면

솔직히 결혼 하기 싫다.


그러니 나한테 더 이상 "결혼 왜 안해요?" 라는 질문 좀 안했으면 좋겠다.